2009. 6. 17. 01:14

Daedelus의 사운드정원

aplomb(태연자약), adventress(모험녀), elegy(애가), quiet now(평온)

 

이 단어들을 나열하다보면 어떤 한 여정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무척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우연히 만난 작품이 일생의 한 길목에서 꽤 선명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는 느낌은 얼마나 소중한가.

 

무척 늦은 나이에 입학한 미술대학원 생활.

한창 개발중인 동네를 지나 버스를 타고나면 또 한참을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는 여정을 반복하면서 그 때의 봄이 흘러갔다. 이리저리 베어진 나무들, 아무렇게나 자라나서 갈색빛으로 겨울을 지내온 커다란 잡초와 넝쿨들, 개발지역으로 지정되어 무엇인가 파헤쳐지거나 세워지고 있는 풍경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수만장의 스틸컷들. 곧 내딛을 안전한 정도의 발걸음의 거리안에만 눈을 두는 나의 시선에 사로잡힌 푸르른 것들. 그리고 그 풍경들보다 먼저 찾아온 바람의 냄새. 

어쩌면 약간의 우수나 감상 정도를 불러일으켰을 풍경들에 대한 기억은 그보다는 훨씬 우아하게 채색되어 있다. 먼 시대의 어떤 정원을 거닐었던 것 같다라는 기억.

 

 

<Invention>, Daedelus, 2002

 

 

위 단어들은 Daedelus의 첫번째 앨범 <Invention>에 수록된 곡들의 제목이다. 누군가에게 말했주었던 것처럼 음악은 공기를 채색한다고 생각한다. 다소 감상적이었던 봄이 우아한 정원여행으로 채색된 것은 Daedelus와의 만남으로부터였다.

그 즈음에 나는 뭐랄까 ... 탐욕스러웠다.

채워지지 않는 주린 배를 지닌 들개마냥 새로운 사운드라면 가리지않고 모니터 앞에서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지냈다. 데스크탑 앞에 앉아서 얼마나 많은 일렉트로닉 음악들을 탐닉했는지....

 

<Invention>은 거의 몇 달간 그 것만 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운드 탐식증에서 빠져나오게 해준 장본인이다. 섬세한 그루브가 아름다운 실내악과도 같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전혀 거스름 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그루브는 나의 몸에 연결되고 사운드는 주변의 것들로 가지를 뻗치고 있다는 느낌. 마치 킹크림슨의 로버트 프립에 견줄 예민함의 소유자가 프립이 도달하지 못한 언덕 위를 드디어 올라서서는 그 아래의 풍경들을 한껏 펼쳐놓은 것 같았다. Daedelus는 몽환적이고 이지적인 풍경에 그루브(동물적이라기보다는 식물 혹은 곤충과 비슷한, 어쩌면 비트라는 표현이 걸맞을)라는 몸체를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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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안(invention)해 놓은 정교한 사운드건축 안에는 30년대, 40년대 그리고 70년대의 음악으로부터 빌어온 샘플링들이 수세기 이전부터 은밀히 가꾸어온 정원의 식물들처럼 우아하게 배치되어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Stephan Dedalus를 따라서 이름 지었다는 Daedelus. 그의 예민한 모던은 그리스 신화의 Crete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Daedalus의 신비한 건축술을 손에 쥐고 싶어한다.

 

 

p.s. Daedalus의 우아하고 이지적인 사운드는 힙합그루브의 정교한 배치가 없었다면 차갑고 세련된 장식처럼 생명력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의 음악을 통해 접하게 된 Left-field Hip-hop 계열의 음악들은 최근 몇년간 나에게 새로운 풍경들을 접하게 해주었다.

블루스와 소울로부터의 Rjd2 / 재즈시대로부터의 Madlib / 앰비언트로부터의 Flying L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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